도니체티: "마리아 스투아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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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데브뢰", "안나 볼레나"와 함께 도니체티의 영국 튜더 시대 오페라들 (소위 '여왕 삼부작') 중의 하나. 역사적인 사실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이탈리아어식 표기로, 프랑스의 왕비였고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었던 '메리 스튜어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톨릭교도인 그녀는 후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통합 왕이 된 제임스 1세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스코틀랜드 신교파에 의해 쫓겨나 엘리자베스 1세의 잉글랜드로 피신한다. 그러나 그녀를 따르는 잉글랜드 내부의 가톨릭교도들과 엘리자베스 1세의 왕권을 지키려는 신교도들간의 갈등의 희생양으로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맡는다.

역사적 배경: 엘리자베스 여왕과 메리 여왕

메리 스튜어트 (1542년 12월 8일 - 1587년 2월 8일)

이 오페라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이해가 약간 필요하며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과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잉글랜드의 튜더 가문을 세운 헨리 7세 (재위: 1485년-1509년)는 1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헨리 8세이며 두 딸 중에서 메리는 서포크의 공작과, 그리고 마거릿은 스코틀랜드의 왕인 스튜어트 가문의 제임스 4세와 결혼을 하게 된다.

헨리 8세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 여왕(본명 엘리자베스 튜더)은 헨리 7세의 손녀이고, 제임스 4세의 손녀 메리 스튜어트는 헨리 7세의 증외손녀가 되어, 메리는 엘리자베스의 종질녀가 되는 셈이다.

영국 역사에 가장 이야깃거리를 많이 남긴 인물은 헨리 8세일 것이다. 헨리는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을 얻기 위해 딸만 낳은 캐서린과 이혼하고자 했으나, 로마 교황측의 허락을 받지 못하자 (캐서린은 신성로마 제국 황제인 칼 5세의 이모였기 때문), 결국 영국의 국교를 개신교로 바꾸는 종교개혁을 단행한 것으로 유명한 왕이다. 그가 이혼후 결혼한 상대는 궁중 시녀였던 앤 불린이며 그녀는 도니체티의 또 다른 오페라 도니체티: "안나 볼레나"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결혼에서 태어난 앤 불린의 딸이 후에 바로 엘리자베스 1세 여왕(1533년-1603년)으로 등극하게 되는데 그녀는 영국이 유럽 제1의 국가로 도약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닦은 가장 위대한 여왕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가톨릭교가 국교인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1542년-1587년)은 부왕인 제임스 5세가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 패한 충격으로 31세로 죽는 바람에 생후 5일째에 갓난아기로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메리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스코틀랜드를 지원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1548년 6세에 프랑스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가톨릭 교도로 양육됐다. 그녀는 1558년 16살이 되던 해에 파리에서 사촌오빠와 호화찬란한 결혼식을 올리는데 남편은 프랑수와 2세로서 이듬해인 1559년 프랑스의 왕위에 올라 메리는 프랑스의 왕비가 된다.

그러나 1년 뒤 프랑수아 2세가 병사하면서 과부가 된 메리는 곧 모국인 스코트랜드로 돌아온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개신교도가 정치적인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가톨릭 교도인 메리는 환영받지 못했다.

1565년 그녀는 구교도인 사촌동생 헨리 단리 경과 재혼하는데 그들의 결혼은 원만하지 못했다. 메리에게는 리치오라는 이탈리아인 비서가 있었는데 단리는 메리와 리치오의 관계를 의심하여 임신부였던 메리가 보는 앞에서 그를 칼로 찔러 죽인다. 이 사건으로 단리에 대한 메리의 혐오감은 급기야 극단적인 증오심으로 바뀐다. 남편은 결혼 후 2년 만인 1567년에 의문의 죽음으로 당한다.

그해 4월 당시의 실력자인 보스웰 백작이 메리를 납치해 강간한 뒤 결혼을 강요했다. 추문을 방지하기 위해 메리는 보스웰 백작과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헨리 스튜어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을 죽인 보스웰 백작과 결혼했다는 사실 때문에 메리의 인기는 현저히 떨어졌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메리가 보스웰 백작과 짜고 전 남편을 죽였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결국 신교도 귀족들은 반란이 일어나고 어린 아들만을 남겨 둔 채 메리는 잉글랜드로 피신하여 엘리자베스 여왕의 보호를 요청하게 된다.

당시 잉글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왕위에는 올랐지만 개신교를 옹호하였기에, 전왕 헨리 8세의 사생아로 여겨지며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는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잉글랜드 내부의 가톨릭을 신봉하는 쪽에서는 적자의 혈통을 잇고, 로마 가톨릭을 숭상하는 메리 스튜어트야말로 잉글랜드의 정통 왕위 계승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로서는 메리를 잉글랜드에 머물게 하자니 국내의 가톨릭 교회들이 자기를 내몰고 메리를 여왕으로 옹립하려고 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그녀를 죄수같이 이 성에서 저 성으로 옮겨서 무려 18년이라는 역경의 세월을 보내게 한다.

그 사이에 영국 내에는 메리를 여왕으로 추대하기 위한 카톨릭 교도에 의한 모반 음모가 여러 차례 일어나고, 여왕의 측근들은 메리가 다른 유력자와 결혼해 왕위를 노리지 못하도록 메리를 반역죄로 몰았다. 1586년 배빙턴이 중심이 되어 구교글 지지하는 비밀결사를 조직, 여왕의 암살과 메리의 구출을 계획하였는데, 배빙턴 음모에 메리가 깊숙히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이때 제시되었던 증거가 위조된 것인지 진짜인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메리는 재판에서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지만 사형선고를 받는다. 엘리자베스는 3개월 동안 망설인 끝에야 사형 집행 영장에 서명했다.

1587년 2월 8일, 메리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상징인 빨간색 드레스를 입고서 노스햄프턴셔의 사형장에서 참수당했다. 메리는 처형장으로 가면서 "한 나라의 군주가 다른 나라의 군주에게 대항하는 것이 어떻게 반역이 될 수 있느냐"며 자신을 변호하였다. [1]

역사

등장인물은 모두 실존 인물이지만 쉴러가 만들어 낸 엘리자베스와 메리의 대면장면은 허구이다. 실제로는 엘리자베스와 메리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또한 로버트 더들리 레스터 백작과 메리 스튜어트 간의 사랑은 대본을 쓴 바르다니가 만들어 낸 허구이다

  • 공연 금지: 리허설 직후 나폴리의 국왕이 공연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는데 이는 당시의 여왕인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메리 스튜어트의 직계 후손이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 초연 연도: 1835년 12월 30일
  • 초연 장소: 밀라노 라 스카라 극장

줄거리

오페라는 포터링헤이 성에 갇혀있는 메리 스튜어트에게 사형언도가 내려지고, 사형이 집행되기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오페라의 내용은 극적 효과를 위해 픽션이 상당히 가미되어 있다. 가톨릭교도의 시각에서 메리 스튜어트를 옹호하는 쪽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등장인물

역사적으로 당시의 레스터 백작의 나이는 55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53세, 그리고 메리 스튜어트는 44세였다.

  • Maria Stuarda: 메리 여왕(소프라노)

역사적으로도 메리는 당대 왕녀들 중 가장 아름답고 키가 늘씬하기로도 유명했으며 그 때문인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게 된다. 임신부였던 메리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옛 비서를 의심하여 칼로 찔러 죽인 전 남편 헨리 단리의 의문사는 오페라에선 메리 자신이 범인인 것으로 3막에서 고백하고 있으며, 반면 배빙턴의 여왕살해 음모에 자신은 무관하다고 신께 맹세한다.

  • Hanna Kennedy: 메리 여왕의 유모(메조소프라노)
  • Roberto: 로버트 더들리, 레스터의 백작(테너)

역사적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를 받은 백작. 1560년 9월에 더들리는 아내의 의문스런 죽음 뒤, 당장이라도 엘리자베스 여왕과 결혼할 것처럼 행동했다. 오페라에선 옥에 갇힌 메리 스튜어트를 동정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역사적인 근거는 없다.

  • Elisabetta: 엘리자베스 여왕(메조소프라노)

역사적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은 로버트 더들리 (레스터 백작)와의 결혼문제에 있어서 끝내 결정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남는다. 레스터 백작이 정치적으로 적이 많았고, 평판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1] 오페라에선 여왕은 레스터 백작을 흠모하지만, 레스터 백작이 메리 스튜어트를 사랑하는 것에 질투를 느끼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전자는 역사적 근거가 있으나 후자는 허구이다.

재무담당 귀족. 엘리자베스가 즉위한 날부터 40년 동안 그림자처럼 여왕을 보필한 여왕의 최측근. 더들리와 여왕간의 결혼설이 나돌자 세실은 자신의 관직을 걸고 더들리와의 결혼을 반대했다.[1]

  • Giorgio Talbot: 조지 탈보트, 슈르스베리의 백작(베이스)

역사적으로 탈보트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메리 여왕을 감시하는 임무를 부여 받은 인물이며 오페라에선 옥에 갇힌 메리 여왕을 돕고 싶어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막/장면 구성

1막

(웨스트민스터 궁의 넓은 방) 프랑스의 프랑수아 앙주 공작과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결혼을 추진하려고 영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사절단을 기념하기 위한 마상경기를 참석하고 돌아온 조정대신들과 귀부인들이 여왕을 기다리며 모여 있다. 여왕은 프랑스의 결혼 제안을 호의적으로 고려해보겠노라고 선언하고 탈보트는 메리 스튜어트의 얘기를 꺼내자, 신하들이 자비를 요청하지만 여왕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만일 저 사악한 여인이 내 마음의 모든 희망을 빼앗아간다면, 무서운 복수의 날이 일각도 지체하지 않고 다가올 것이오"라고 답한다.

여왕의 마음희 희망이란 다름아닌 레스터 백작인데 뒤늦게 나타난 레스터 백작은 여왕은 프랑스 사절의 결혼 제안을 받아들이는 뜻에서 자신의 반지를 대신 레스터 백작인 전해줄 것을 요청하지만 레스터의 얼굴색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속으로 섭섭해한다.

탈보트는 레스터와 함께 퇴장하려다 둘이 밀담을 나눈다. 탈보트는 메리가 갇혀 있는 포터링헤이 성을 다녀오는 길이라며 레스터의 도움을 요청하며 메리의 초상화와 편지를 레스터에게 전한다.

레스터는 "그녀에게 자유를! 아니면 그녀와 같이 죽겠습니다!"라며 다짐하지만 탈보트와 있던 모습을 여왕에게 들키게 되고 여왕의 추궁에 못이겨 편지를 여왕에 건내고 만다. 편지에는 레스터에게 여왕과의 면담을 주선해달라는 간청이 쓰여 있어, 여왕은 본노하며 편지를 읽더니 놀라움과 측은함을 느낀다.

그러나 곧 메리를 사랑하는 레스터를 확인하고 질투와 분노를 느낀다. 여왕은 속으로 "저 오만한 여인은 점점 대담해져 내가 사랑하는 남자까지 빼앗으려고 하는구나. 아! 그녀에게 너무 모욕 당했어, 대가를 치루게 하겠어."라고 복수심을 불태운다. 결국 레스터의 간청에 못이기는 척하며 메리의 감옥 근처에 있는 숲으로 사냥을 떠나기로 약속한다.

2막

(포터링헤이 성의 마당) 유모와 함께 메리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자신의 고향 프랑스와 자유를 그리워한다. 이윽고 여왕의 사냥행렬이 도착하고 먼저 레스터 백작이 나타나 여왕에게 겸허하게 대하여 부디 풀려날 수 있도록 하자며 설득하고, 메리는 자신 때문에 레스터 백작이 위험해지지 않을까 걱정해준다.

메리가 나가고, 엘리자베스가 등장하자 레스터는 급히 그녀를 영접하러 나간다. 여왕과 신하들 앞에서 레스터는 재차 메리에게 자비를 부탁하지만 여왕은 속으로 "난 그녀를 증오해! 이 남자의 머리 속은 온통 그녀 뿐이야!"라며 질투를 느낀다.

마침내 메리와 여왕의 거북스럽고 긴장된 만남이 성사된다. 메리는 애써 무릎을 꿇고 여왕의 용서를 빌어보지만 여왕은 "그 더럽고 수치로 가득찬 곳이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곳이지"라며 거절한다. 결국 메리와 여왕은 서로 참지 못하고 극단으로 치닫는다. 여왕은 "당신의 그 부정(不淨)한 결혼침대, 불행한 남편의 영혼"을 언급하고 메리는 "앤 불린의 천박한 딸", "음탕한 매춘부", "비열한 사생아"로 여왕을 모독한다.

여왕은 "저 미친 여인을 끌고가라"고 소리치고, 메리는 도리어 "이제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됐노라"고 답한다. 신하들은 메리의 처형을 외치고, 레스터와 탈보트는 절망한다.

3막

1장

(웨스트민스터 성의 어느 방) 여왕이 사형 집행 영장에 서명하는 것을 망설이자, 측근 세실은 여왕을 설득하고 마침내 서명을 받아낸다. 그 직후 레스터가 들어오고 그것이 사형집행서인 것을 알고는 마지막으로 자비를 요청해보지만 도리어 메리 스튜어트의 사형집행의 입회인이 되라는 답을 받고는 분노한다.

2장

(포타링헤이 성에 있는 메리 스튜어트의 방) 세실이 탈보트와 함께 사형집행서를 갖고 메리를 찾아온다. 세실은 잠시 사형집행을 짤막하게 알리고 자리를 떠나지만 뒤에 남은 탈보트는 레스터 백작인 사형집행을 지켜보도록 여왕이 명령했음을 알려주고 죽음을 앞둔 메리를 위로하고 그녀의 고백을 듣는다. 이때 메리는 임신부였던 메리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옛 비서를 의심하여 칼로 찔러 죽인 전 남편 헨리 단리의 의문사는 오페라에선 메리 자신이 범인인 것으로 3막에서 고백하고 있으며, 반면 배빙턴의 여왕살해 음모에 자신은 무관하다고 신께 맹세한다. 탈보트는 하느님이 그녀를 용서해주실 것이라 기도한다.

3장

(사형집행실의 옆에 있는 방, 멀리 떨어진 끝에 잠겨있는 큰 문이 있다. 한밤중) 메리의 지지자들, 탈보트, 유모가 애통해하는 가운데 세실이 메리의 사형을 집행하려 한다. 메리는 죽기 전에 세실에게 2가지 부탁을 하는데 단두대까지 유모 한나와 같이 있고 싶다는 것과 엘리자베스 여왕을 용서한다는 것을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때 레스터 경이 들어오고 둘은 이별을 나눈다.

마침내 마지막 대포소리가 들리고 탈보트와 경비병들에 둘려싸여 메리는 방의 저쪽 끝으로 옮겨진다. 레스터가 얼굴을 손으로 감싼다.

한글 대본

대본 자료실

디스코그래피

고클래식 디스코그래피

외부 링크

  1. 위키피디아 영문

출처

  1. 1.0 1.1 1.2 이야기 영국사, 김현수 지음, 청아출판사 20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