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체크: 현악 4중주 2번 "비밀편지"
밀란 쿤데라의 평가
체코 출신의 유명한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그의 수필 "Les testament trahis" (국내 번역서명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 김병욱 옮김, 청년사)에서 그는 조국 출신의 현대 작곡가 야나체크을 향한 애정을 아낌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는 특별히 수필의 한 장을 통채로 빌어서 프랑스의 음반가게로 찾아나선 야나체크 CD 사냥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야나체크의 두 현악 4중주를 일컬어 "야나체크의 절정; 그의 표현주의의 정수가 거기, 총체적 완벽성안에 집약되어 있다"고 찬양한다. 좀더 그의 설을 인용하면
- "<표현주의>라는 말에 잠시 멈춰 본다: 한 번도 자신을 거기에 관계시킨 적은 없으나 사실상 야나체크는 이 말을 전적으로, 문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 유일의 위대한 작곡가이다: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은 표현이며, 어떤 음정도 그것이 표현이 아니면 존재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단순한 '기교'상의 면: 즉 이행부들, 전개부들, 대위법적 중음부의 구조, 관현악법의 관례 등이 완전히 부재한다 (반면에, 몇몇 솔로 악기들로 구성되는, 전혀 새로운 전체적 효과로 이끌린다). 그 결과 연주자들로서는 음정 하나하나가 표현인 만큼 그 각 음정이 (모티브만이 아니라 모티브의 각 음정이) 최대치의 표현력의 빛을 지니게끔 해야한다. 이 점도 분명히 말해두자: 독일 표현주의 (쇤베르크가 창시한, 주)는 광란이나 광기같은 과잉 영혼 상태에 대해 지나친 기호로 특징지워진다. 내가 야냐체크에게서 표현주의라 부르는 것은 이 일측성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는 지극히 풍요로운 감정의 부채이며, 이행부 없이 어지로울 만치 정밀하게 짜인, 상냥함과 야만성, 분노와 평화의 대면이다.”
역사
작곡가는 40대에 두 아이를 잃은 후 가정은 불화가 계속되었고 독일계 귀족 출신의 그의 아내는 농촌 출신의 야나체크과 잘 맞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 보헤미아 피세크의 골동품상의 아내인 카밀라 스테슬로바라는 38세 연하의 여인과의 늙으막의 연애가 있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은 그로 하여금 창작의 정열을 불태우게 해서 그녀와의 연애가 없었더라면 그가 죽기전 10년동안 이룩해놓은 모더니즘의 걸작들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야나체크의 두 번째 현악 4중주는 바로 카밀라와 오갔던 약 700통의 연애편지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다. 작곡가가 그녀에게 쓴 연애편지의 내용은 '그대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낮동안에 광야를 비췄던 태양이 밤에도 떠 있는 것만 같이 한결같다'라는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극히 낭만적인 것이었다. 카밀라 역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악 4중주 1번의 소재가 됐던 '불행한 여인의 초상'을 야나체크는 그의 이 마지막 실내악곡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카밀라는 이 곡외에도 야나체크의 오페라 "예누파"와 "카탸 카바노바"의 비극적인 여인상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현악 4중주 2번은 1928년 2월에 작곡되었으며 곡을 완성시킨 반 년 후에 그는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그 사인은 카밀라의 아이를 데리고 피크닉을 갔다가 아이를 잃어버리고 빗속을 찾아 헤맨 결과 생긴 폐렴 때문이었다고 한다. 초연은 작곡자 사후인 같은 해 9월에 모라비아 쿼텟에 의해 행해졌다.
악기 편성
바이올린 2, 비올라, 첼로
해설
사이키한 심리극을 연상시키는 현악 4중주 1번보다 이 2번은 보다 긴밀하게 구성된 걸작으로 평가된다.
- 작곡자가 카밀라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을 묘사한 것으로 해석되는 1악장은 제 1번 현악 4중주에서와 같이 맨 처음 안단테로 등장하는 악상이 전곡을 통일하는 주제의 원형이 되고 있다. 곧이은 특이한 음색의 비올라가 제 2의 동기를 제시한다. 곡의 진행이 알레그로로 빨라지면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셋잇단음표를 포함하는 빠른 주제를 제시하면서 발전해나간다. 후반부의 첼로의 독립된 리듬감있는 움직임이 단조로운 곡의 흐름을 깨고 있어서 재미있다.
- 2악장은 작곡가가 카밀라에 보낸 편지에 의하면 '당신과 함께 있었던 그 곳에서의 우리가 서로를 원했던 그 천국같았던 순간'을 표현했노라고 하는데 야나체크 내외와 스테슬로바 내외가 1917년 온천지 루하초비체에서 보낸 여름 휴가에서 있었던 두 사람간의 관계를 묘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느낌은 아다지오로 느릿하면서도 낙천적인 선율을 노래하는 바이올린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후반부에서 다시 프레스토로 빨라지는 바이올린의 조급한 선율은 그런 그들의 비밀연애에 파고드는 불안감을 묘사했다고 해야할까?
- 3악장은 야나체크가 느끼는 카밀라의 이미지 자체를 창조해보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그에 걸맞게 중간부에 비올라와 첼로의 규칙적인 리듬위로 흐르는 바이올린의 선율은 전곡을 통해 가장 뚜렷한 선율미를 보여준다. 이 부분은 야나체크 스스로도 그가 작곡한 가장 아름다운 선율로 여겼다한다.
- 4악장은 작곡가가 연인에 대한 '불안'을 표현함과 동시에 연인에 대한 '그리움' 그러나 '결국에 채워지는 것으로 끝맺어지는 그리움'을 표현한다. 첼로의 자신있는 리듬감있는 반주로 시작한 바이올린의 노래는 곧 이어지는 혼란스런 부분으로 방해받는데 이는 곧 야나체크의 그런 '불안'을 표현했다면 이어지는 춤추며 행진하는 듯한 명랑한 악상이 악기들을 바꿔가면서 불려지는데 이는 바로 '채워진 그리움'을 표현하는 사랑의 찬가에 해당한다. 이 사랑의 찬가는 전체 곡의 긴장을 풀어주는 카타르시스적인 작용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매력 포인트라하겠다. 4악장을 마무리 짓는 코다에서도 이 찬가는 되풀이 되면서 악기들의 음색을 마음껏 뽐내게 한 후 화려하게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