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체크: 현악 4중주 1번 "톨스토이의 크로이쳐 소나타에 부쳐"
- 장르: 실내악
- 작곡가: 야나체크 (JANACEK)
- 작품명: 현악 4중주 1번 "톨스토이의 크로이쳐 소나타에 부쳐" (String Quartet No. 1 "After Tolstoy's The Kreutzer Sonata")
밀란 쿤데라의 평가
체코 출신의 유명한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그의 수필 "Les testament trahis" (국내 번역서명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 김병욱 옮김, 청년사)에서 그는 조국 출신의 현대 작곡가 야나체크을 향한 애정을 아낌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는 특별히 수필의 한 장을 통채로 빌어서 프랑스의 음반가게로 찾아나선 야나체크 CD 사냥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야나체크의 두 현악 4중주를 일컬어 "야나체크의 절정; 그의 표현주의의 정수가 거기, 총체적 완벽성안에 집약되어 있다"고 찬양한다. 좀더 그의 설을 인용하면
- "<표현주의>라는 말에 잠시 멈춰 본다: 한 번도 자신을 거기에 관계시킨 적은 없으나 사실상 야나체크는 이 말을 전적으로, 문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 유일의 위대한 작곡가이다: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은 표현이며, 어떤 음정도 그것이 표현이 아니면 존재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단순한 '기교'상의 면: 즉 이행부들, 전개부들, 대위법적 중음부의 구조, 관현악법의 관례 등이 완전히 부재한다 (반면에, 몇몇 솔로 악기들로 구성되는, 전혀 새로운 전체적 효과로 이끌린다). 그 결과 연주자들로서는 음정 하나하나가 표현인 만큼 그 각 음정이 (모티브만이 아니라 모티브의 각 음정이) 최대치의 표현력의 빛을 지니게끔 해야한다. 이 점도 분명히 말해두자: 독일 표현주의 (쇤베르크가 창시한, 주)는 광란이나 광기같은 과잉 영혼 상태에 대해 지나친 기호로 특징지워진다. 내가 야냐체크에게서 표현주의라 부르는 것은 이 일측성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는 지극히 풍요로운 감정의 부채이며, 이행부 없이 어지로울 만치 정밀하게 짜인, 상냥함과 야만성, 분노와 평화의 대면이다.”
역사
야나체크과 러시아 문학과의 관계는 아주 밀접하다. 그의 오페라 중 많은 작품들이 러시아 문학을 그 원작으로 하고 있다. 1923년에 작곡되고 이듬해 초연된 야나체크의 현악 4중주 1번 역시 톨스토이의 베토벤의 동명 바이올린 소나타를 제목으로한 소설 "크로이쳐 소나타" (1889년작)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현악 4중주의 이름 역시 "톨스토이의 <크로이쳐 소나타>에 영감을 받아"라고 되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 바람난 자신의 아내를 죽여버린다는 결말에서 받은 충격에서 영감을 얻은 야나체크는 이 곡에서 주인공 남편의 질투심과 그 결과로 인한 연애의 비극적인 측면을 현악 4중주로 표현했다고 하겠다. 동시에 그 죽은 여인에 대한 동정심을 바탕으로 톨스토이에 대한 항의의 뜻도 품고 있다. 후에 소개할 야나체크의 말년의 애인 카밀라 시테슬로바 (Kamila Stosslova, 1892 - 1935)에 1924년 보낸 편지에서 "나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그의 소설 <크로이쳐 소나타>에 등장하는 고통받고, 아파하며, 쓰러져가는 가련한 한 여인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었다"라고 그는 쓰고 있다.
또한 작곡자가 소장했던 톨스토이의 이 단편 소설중 다음에 인용할 한 구절을 작곡가가 빨간색으로 줄을 쳐놓은 것이 발견되는데 이 또한 이미 언급한 작품의 휴머니즘적인 성격을 극명히 보여준다:
- "나는 그녀의 맞아서 멍든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나의 남편으로서의 권리와 나의 상처받은 자존심에 대해 잊어버렸다. 처음으로 나는 그녀를 하나의 인간으로 보게되었던 것이다."
악기 편성
바이올린 2, 비올라, 첼로
해설
- 1악장은 약음기를 단 바이올린과 비올라로부터 제시되는 우수에 찬 짧은 가락과 함께 곧이어 첼로에 의해 나타나는 무곡풍의 기이한 선율이 교대로 발전된다. 이 곡이 헌정되고 초연하기도 했던 체코 쿼텟의 비올라 주자겸 작곡자 조세프 수크에 의해 개정된 대본을 오리지날로 복원시켰던 스메타나 쿼텟의 비올라 주자 밀란 시캄파 (Milan Skampa, 1928 -)에 의하면 이 1악장은 소설에 등장했던 불쌍하고 지친 여인의 초상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 2악장은 여인을 유혹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등장을 나타냈다고 해석되는 바이올린의 그림자 깃든 노래로 시작된다. 하지만 1악장의 약음기를 단 주제는 이곳에도 고개를 쳐들며 비극성을 암시해준다. 이에 답하는 어두운 비올라와 첼로의 중얼거림은 소설의 답답하고 서글픈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한 듯하다. 곡은 이런 어두움을 씻어버리려는듯 빠르게 흘러도 보지만 결국 처음으로 돌아와서 느릿하게 마감짓는다.
- 스케르초 악장에 해당하는 3악장은 느릿하게 흐르는 슬픈 선율의 흐름을 방해하는 ff의 자극적인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외침이 인상적이다. 이 악장에서 중반부에 나오는 첼로와 비올라의 반주에 함께 등장하는 바이올린의 높고 아름다운 외침은 곡전체의 백미라고 할만하다. 파국으로 치닫는
- 4악장은 느릿하고 긴 서주후에 질주하는 비올라와 이를 따르는 세 악기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곡은 제 1악장 첫 주제의 리듬과 변주를 점점 키워가면서 모든 것을 녹여버릴듯 몰입하는 클라이막스에 이르러서는 편안한 안식을 주는듯 고요하게 사라져간다. 곡의 이런 표현주의적 성격 때문에 실제로 본고장 프라하에서는 배우들에 의해서 이런 주인공들의 심리가 직접 연기된 후 곧이어 현악 4중주단의 연주로 곡을 감상하는 식의 공연이 행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