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전주곡 op. 28
쇼팽의 전주곡(Prelude)은 이전에 작곡되었던 순수한 의미의 전주곡은 아니다. 쇼팽 이전에는 항상 푸가 앞에 붙는 짤막한 도입곡으로 사용되거나 모음곡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곡이었으며 그러한 이유에서 '전주곡'이라고 번역된 것이다. 쇼팽의 전주곡은 그 자체로서 독립된 음악이므로 '전주곡'이라는 보편적인 해석은 옳지 않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음악적인 발상은 바흐의 전주곡과 전혀 다름이 없다. 작곡 양식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지만 24개의 모든 조에 걸쳐 작곡되었다는 점이라든가 하나의 아이디어에 기초하여 한 곡이 완성된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바하의 전주곡과 공통되는 또 하나의 사실은 24개의 모든 조성으로 작곡을 실시하면서 각각의 조성에 대해 작곡가가 가지고 있던 인상, 혹은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음악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 곡들에는 쇼팽의 가장 뛰어난 모습들이 남김없이 드러나 있고, 작곡기법의 능수능란함은 완전히 모차르트를 능가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이들 곡에는 시적인 감흥과 회화적인 이미지가 공존하고 있으며, 각각의 곡은 보석처럼 고귀한 빛을 내뿜고 있는 고차원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주곡에서 쇼팽의 어떤 음악은 정열적이고 과격하며 (16번), 또 어떤 곡은 경쾌하고 목가적이며 (3번, 23번), 혹은 유쾌하고 (11번), 어떤 곡은 절망적이다 (24번, 18번). 위에서 열거한 몇 가지 성격 외에도 전주곡집에는 쇼팽의 수많은 표정이 남김없이 드러나 있으며 이 곡들을 하나의 연속적인 음악으로 연주했을 때에는 형이상적인 애매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역사
- 작곡 연도: 1836~1839년
- 작곡 장소: Paris
- 출판/판본: 1839년
- 헌정, 계기: 요제프 크리스토프 케슬러, 카미유 플에이엘
- 초연 연도: 미상
- 초연 장소: 미상
- 초연자: 작곡가 자신으로 추정.
쇼팽의 전주곡의 작곡에 대해 흔히 이야기되는 일화로서 그의 연인 죠르쥬 상드 (Geroge Sand)와 함께 했던 1838년과 1839년사이의 겨울, 스페인의 마요르카섬으로의 비극적인 요양에 대한 내용이 있지만 이것은 음악을 듣는 데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더러 대부분의 작곡일화가 그렇듯이 그 사실성 역시 의심스러운 것이다. 마요르카 섬으로의 요양은 확실한 사실이지만 '전주곡'의 대부분의 곡들은 그 요양을 떠나기 이전 (1836년경)에 이미 완성되었거나 스케치의 형식으로 남아 있던 것이었다. 적어도 15번 전주곡을 들을 때에는 어느 정도의 문학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코르토가 주장했던 방식 - 각각의 곡에 표제를 붙여서 이해하라 - 는 연습방식은 이 곡의 연습과정에서 일시적인 도움은 될 지언정 근본적인 해석의 방법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코르토 또한 연습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을 위해 '표제'를 붙일 것을 제안한 것일 뿐 이 음악을 심각하게 문학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악기 편성/성악가/등장인물
피아노 독주
악장 구성
- 1번 C장조 Op.28-1 아지타토, 2/8박자. 곡의 첫머리에 나타나는 한 마디의 동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 처리하며 뛰어난 음악적 효과를 냄.
- 2번 a단조 Op.28-2 렌토, 2/2박자. 조성은 처음에는 e단조로 시작하여 G장조로 바뀜.
- 3번 G장조 Op.28-3 비바체, 2/2박자. 곡 전체에 걸쳐 반복되는 16분음표의 조급한 반주 위에 희미한 선율이 오른손으로 연주됨.
- 4번 e단조 Op.28-4 라르고, 2/2박자. 제6번 b단조와 함께 파리의 마들렌 성당에서 거행된 쇼팽의 장례식에서 성당의 오르간으로 연주.
- 5번 D장조 Op.28-5 알레그로 몰토, 3/8박자. 첫 4마디가 악구를 이루어 다음 8마디로 고조되고, 이어서 4마디로 된 F sharp장조의 후악구가 나옴. 으뜸조로 되돌아가 전체가 반복되고, 거기에 처음의 4마디 악구에 바탕을 둔 코다가 이어짐.
- 6번 b단조 Op.28-6 렌토 아사이, 3/4박자.
- 7번 A장조 Op.28-7 안단티노, 3/4박자. 곡은 마주르카풍의 8마디의 선율로 구성된 악절 두 개로 이루어짐.
- 8번 f sharp단조 Op.28-8 몰토 아지타토, 4/4박자. 곡은 제1번 C장조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짧은 동기를 중복하여 엮은 것. 구조는 3부 형식.
- 9번 E장조 Op.28-9 라르고, 4/4박자. 셋잇단음표의 반주형을 가운데 끼고 아래위의 양성부로 연주되는 선율을 가지는 4마디의 한 악구가 세 번 변화하면서 되풀이됨.
- 10번 c sharp단조 Op.28-10 알레그로 몰토, 3/4박자. 즉흥적인 곡. 4마디의 조급하고 짧은 악구가 네 번 되풀이 됨.
- 11번 B장조 Op.28-11 비바체, 6/8박자. 곡의 주체가 되는 것은 2마디의 서주 다음 3째마디부터 시작하는 4마디의 한 악구이며, 이것이 바로 반복됨.
- 12번 g sharp단조 Op.28-12 프레스토, 3/4박자. 으뜸조가 되는 것은 첫 8마디의 악구.
- 13번 F sharp장조 Op.28-13 렌토, 6/4박자.
- 14번 e flat단조 Op.28-14 알레그로, 2/2박자. 유니즌으로 연주되는 셋잇단음표 4개로 구성되는 한 마디의 동기를 반복, 발전시킨 곡.
- 15번 D flat장조 Op.28-15<빗방울> 소스테누토, 4/4박자. 제6번 b단조와 마찬가지로 <빗방울 전주곡>으로 널리 알려진 곡.
- 16번 b flat단조 Op.28-16 프레스토 콘 푸옼, 2/2박자.
- 17번 A flat장조 Op.28-17 알레그레토, 6/8박자. 곡의 구조는 A-B-A-C-A
- 18번 f단조 Op.28-18 알레그로 몰토, 2/2박자.
- 19번 E flat장조 Op.28-19 비바체, 3/4박자. 구성은 3부 형식.
- 20번 c단조 Op.28-20 라르고, 4/4박자.
- 21번 B flat장조 Op.28-21 칸타빌레, 3/4박자. 구조는 3부 형식.
- 22번 g단조 Op.28-22 몰토 아지타토, 6/8박자.
- 23번 F장조 Op.28-23 모데라토, 4/4박자.
- 24번 d단조 Op.28-24 알레그로 아파시오나토, 6/8박자.
해설
쇼팽의 전주곡은 바하의 '전주곡과 푸가'와 마찬가지로 24개의 모든 조에 걸쳐 작곡되었지만, 조의 배열순서는 전혀 별개의 방법을 취하고 있다. 바하의 전주곡과 푸가는 C장조에서 시작해서 다음은 C단조, C sharp장조, C sharp단조와 같이 반음계적으로 상승하여 마지막에 B조로 끝나는 구성으로 24개의 조를 다루고 있는 반면에 쇼팽의 전주곡은 C장조로 시작하여 관계조인 A단조, 다음은 G장조, 관계조인 E단조 A장조, F sharp단조와 같은 5도를 기준으로 한 조성배열을 하고 있다.
악보를 전체적를 보면 자연조인 C조에서, sharp(#)기호가 하나씩 늘어나서, sharp의 수가 최대가 되는 13번에서 장조의 클라이막스를 이루고, 14번부터는 반대로 6개의 flat(b)을 가지는 E flat단조에서부터 점차로 조표의 수를 줄여나가기 시작한다. 단조의 클라이막스인 동시에 음악적인 클라이막스는 13번과 대칭되는 16번에 위치한다. 전체의 배열은 이렇듯 매우 우아하게 이루어져 있지만 이 음악들은 바하의 음악처럼 기하학적인 구조를 가지지는 않는다.
1번 C장조, Agitato 연주시간이 1분이 되지 않는 짤막한 곡이다. 2/8박자라는 다소 특이한 박자를 취하고 있으며 밝고 경쾌한 느낌을 전해준다. 즉흥적인 성격이 강한 곡이지만 선율선의 포인트가 중반 이후에 강음으로 옮겨진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2번 A단조, Lento, 2/2박자 (파데레프스키판에서는 4/4박자) 낮은음에서 시종 반복되는 우울한 리듬을 타고 우울한 선율이 노래하듯이 흐른다. 이 우울함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으며 왼손의 집요한 선율을 띤 리듬을 잘 노래시키는 것이 곡의 포인트가 된다.
3번 G장조, Vivace, 2/2박자 왼손의 유창하고 날렵한 움직임이 매우 인상적인 곡이다. 선율은 강한 싱커페이션을 띠고 있다. 마지막에 왼손의 움직임을 흉내낸 움직임이 양손에서 동시에 전개되고 살며시 곡을 끝마친다.
4번 E단조, Largo, 2/2박자 2,3,4마디에 붙어 있는 C음은 충분히 끌어 주어 구슬픈 선율을 잘 살려 줄 필요가 있다. 쇼팽 스스로 이 곡을 매우 좋아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의 장례식에서 연주되기도 했던 곡이다.
5번 D장조, Molto allegro 3/8박자 가볍고 화려한 분산화음들 사이에 단순하지만 우아한 선율이 떠오른다. 5마디째부터는 액센트를 가진 8분음표 없이 16분음표의 분산화음만으로 발랄한 악상을 전개해하가며, 이러한 형태를 반복하다가 곡은 갑작스럽게 끝난다.
6번 B단조, Assai Lento, 3/4박자 매우 시적인 음악이다. 선율은 왼손에서 느긋하게, 그리고 우울하게 흐르며 오른손은 단조롭게 흔들리는 듯 한 리듬만을 집요하게 반복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이 리듬은 더듬거리면서 정지하고 ppp로 조용히 끝마친다.
7번 A장조, Andantino, 3/4박자 이 곡의 선율은 6번 전주곡의 선율동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주르카 풍의 단순한 선율이지만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시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불과 17마디의 짧은 곡이며 선율과 화성도 극히 단순하지만, 그 깊이는 만만치 않다.
8번 F sharp단조, Molto Agitato, 4/4박자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듯 한 악상이다. 피아노라기보다는 오히려 바이얼린의 주법을 연상시키는데, 중간부를 제외하고는 약음으로 연주하는 부분이 많으므로 그 긴장감을 더욱 극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9번 E장조, Largo, 4/4박자 이 곡의 경우 'Largo'라는 속도기호가 주는 인상은 '느리다'라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폴로네에즈적인 싱커페이션을 동반한 선율과 중후하고 단호하면서도 생기있는 악상이 이 곡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10번 C sharp단조, Molto Allegro, 3/4박자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마주르카. 연주에 따라 초반의 하행하는 셋 잇단음표에 박자의 액센트를 두기도 하지만 4, 5마디째의 선율에 마주르카의 독특한 리듬을 살리는 것이 좋다.
11번 B장조, Vivace, 6/8박자 우아하고 경쾌한 악상이라는 점에서 3번과 유사하지만 시원스러운 맛은 덜 한 대신, 아기자기하고 반짝이는 듯 한 즐거움이 있다.
12번 G sharp단조. Presto, 3/4박자 3박자를 취하고 있지만 이 곡은 스케르초와도 마주르카와도 틀리다. 악상은 대단히 맹렬하며, 응축된 에너지감은 참으로 일품이다. 흐름은 자잘하게 나누어지는 액센트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큰 레가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13번 F sharp장조, Lento, 6/4박자 장조의 클라이막스를 이루는 곡이다. 또한 이 곡에 이어지는 단조는 d-sharp단조가 아니라, e-flat단조로 나타난다. 요컨데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은 이 곡에서 갑자기 끊어져 버린다. 녹턴풍의 몽환적인 선율이 왼손의 나른한 분산화음을 타고 흐른다. 정확하게는 '선율'이 아니라 화음이다. 조성이 가지는 환상적이고 한편으로는 달콤한 분위기가 적당한 퇴폐성을 가지고 있으며, Piu lento로 나타나는 중간부의 동기는 쇼팽 음악의 한 극한을 보여준다.
14번 E flat단조, Allegro, 2/2박자 Oxford판에는 속도가 'Largo'로 지시되어 있다. 피아노 소나타 2번의 마지막악장과 대단히 유사한 악상이다. 건조하고 무표정한 화성이 연신 시무룩하게 울린다. 2번 소나타의 피날레와 비교한다면 수직적인 화성진행이 훨씬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음악의 무게도 이 전주곡 쪽이 훨씬 무겁다.
15번 D flat장조, Sostenuto, 4/4박자 곡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들려오는 A-flat(혹은 G-sharp)음 때문에 '빗방울'이라는 제목이 붙은 유명한 곡이다. 꼭 A-flat음이 아니라도, 이 곡은 비오는 날의 분위기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창문 밖으로 비 오는 거리를 내다본다거나, 처마 밑에 서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는 듯 한 지극히 매력적인 분위기가 이 곡에 살아있다. 중간부에서 곡은 c-sharp단조로 전조되어 먹구름이 낀 듯한 불안정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실 이러한 불안정함도 무척 편안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16번 B flat단조, Presto con fuoco, 2/2박자 악상기호대로 거칠게 질주하는 곡이다. 맹렬한 박력을 지니고 있으며(Op10-4의 c-sharp단조 연습곡과도 통하는 데가 있다) 리드미컬한 왼손의 반주가 주는 스피드감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종종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하지만, 곡의 끝맺음은 극히 상쾌하다. 이 곡은 전주곡집 전체를 통해 하나의 클라이막스를 이루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전환점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17번 A flat장조, Allegretto, 6/8박자 잔잔한 반주를 동반한 화음의 칸타빌레이다. 두텁게 겹쳐진 화음의 맨 윗음이 선율을 노래하고 길게 테누노되는 음이 하나의 동기를 마감한다. 연습곡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따사로운 선율은 편안함을 느끼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루하다는 느낌도 받게 한다.
18번 F 단조, Molto Allegro, 2/2박자 (파데레프스키판에서는 4/4박자) 갑작스레 신경질적인 악상이 나타난다. 한 마디 내에 accel, rall의 두 가지 루바토가 쓰이도록 작곡된 듯 하다. 오페라의 레치타티보처럼, 날카롭게 중얼거리는 듯 한 악상, 그리고 클라이막스에서는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고, D-flat유니즌의 격렬한 트레몰로와 격한 스타카토로 곡을 끝맺는다.
19번 E flat장조, Vivace, 3/4박자 베토벤에게 있어 이 조는 흔히 영웅적인 과시를 나타내는 조였으나, 쇼팽에게 있어서의 이 조는 즐겁고 따사로운 분위기를 나타내는 조성인 것 같다. 더욱이 그 델리킷 한 악상은 이 곡을 연주하는데에 요구되는 고도의 기교를 거의 의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리스트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 이런 부분이다.
20번 C단조, Largo, 4/4박자 마찬가지로 베토벤의 c단조는 비극적이고, 웅대한 조이지만 쇼팽의 c단조는 비장하고 구슬픈 느낌의 조성인 것 같다. 남성적이고 도덕적인 베토벤과 여성적이고 퇴폐적인 쇼팽의 대조적인 특성이 조성에 대한 성격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곡 전체에 일관되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으며, 또 단조로운 악상 속에 다양한 표정이 숨어 있다.
21번 B flat장조, Cantabile, 3/4 한없이 우아하고 감미로운 선율이 곡 전체를 일관하고 있는 곡이다. 오른손은 선율을, 왼손은 기타의 반주처럼 달콤하고 교묘한 분산화음을 연주한다. 장식음은 이 곡의 귀족적이고 단정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22번 G단조, Molto Agitato, 6/8박자 다시 한번, 분노가 출현한다. 18번과 마찬가지로 이 분노는 해소되지 않고, 들끓는 가운데 종료되어버린다. 양손이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싱커페이션을 지닌 프레이즈가 흥분된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다.
23번 F장조, Moderato, 4/4박자 E-flat장조에 대한 자세는 베토벤과 틀리지만 F장조에 대한 개념은 동일한 듯 하다. 목가적이고 자연스런 분위기가 곡을 통해 흐르듯이 흘러나온다. 가볍고 유려한 선율이 이 곡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24번 D단조, Allegro Apassionato, 6/8박자 왼손의 격렬한 움직임이 주체할 길 없는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선율은 정열적이며, 계속해서 나타나는 스케일이 터질 듯 한 감정을 해소하고 있는 것 같다. 트릴, 스케일, 하강하는 아르페지오, 3도 등등 다양한 기교들이 등장하고, 크게 움직이는 왼손의 움직임 위에 정열적인 선율이 노래되다가 갑작스런 하강에 뒤이은 커다란 세 개의 D음으로 곡을 끝맺는다.
쇼팽의 전주곡이 가지는 음악적인 감흥을 글로 설명하려면 형용사의 부족을 자꾸만 느끼게 된다. 이 곡들이 하나가 되어 가지는 아름다움을 굳이 표현하려면, 빛이 투과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에 비유하면 될까? '전주곡'이 가지는 음악적인 수용력은 무궁무진 하므로, 누구의 연주는 좋고, 누구의 연주는 나쁘다고 생각할 것 없이, '이것은 이래서 좋고, 저것은 저래서 좋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즐겁게 감상하는 것이 이 곡에 대한 최선의 접근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