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E flat장조 op. 73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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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르: 협주곡
  • 작곡가: 베토벤 (BEETHOVEN)
  • 작품명: 피아노 협주곡 5번 E flat장조 op. 73 "황제" (Piano Concerto No. 5 in E flat major op. 73 "Emperor")

목차

"황제" 이전의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들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양식을 확립한 것은 모차르트였다. 특히 마지막 협주곡들에서 보여준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작곡양식은 피아노 협주곡의 새로운 흐름을 암시하는 듯이 느껴질 정도로 참신한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요절에 의해 피아노 협주곡의 발전은 상당히 지체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 변화의 흐름을 베토벤이 이어받았다는 사실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베토벤은 모차르트와 달리 근본적인 '혁신가'였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처음 작곡한 두 곡의 협주곡은 어느 정도 '색깔'이 있는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완전히 모차르트의 영향 속에 있는 작품들이며, 3번 C단조의 협주곡에 이르러서야 베토벤 자신의 목소리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자체가 피아노 협주곡양식 자체의 변화이자 혁신을 의미하고 있다.

젊은 패기를 내세우면서 강한 개성을 나타내었던 3번 협주곡에 비해 4번 협주곡은 오히려 퇴행한 듯이 보인다. 모차르트의 영향이 다시 엿보인다는 점, 베토벤 특유의 명쾌한 어법이 아니라, 상당히 복잡하고 애매한 표정을 취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다소 뒤쳐지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다만, 한 가지 4번 협주곡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의의가 있는데, 피아노 솔로가 1악장의 서두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고전파의 협주곡에서는 관현악 파트가 주제를 제시하면서 곡을 시작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으나 베토벤의 4번 협주곡에서 처음으로 독주악기의 솔로가 서두를 맡게 되는 것이다. 이후에 작곡된 슈만, 리스트, 차이코프스키, 그리그 등의 유명한 협주곡에서 보이는 서두는 예외 없이 베토벤의 양식을 염두에 두고 작곡된 것이다.

역사

  • 작곡 연도: 1808년 착수~1809년 완성
  • 작곡 장소: Wien
  • 출판/판본: 1811년
  • 헌정, 계기: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됨. 피아노 협주곡 4번에서 새롭게 시도한 부분을 다시 대담하게 발전시킴. 1악장 첫부분에 피아노 카덴차를 둠. 2, 3악장은 중단없이 긴밀하게 연결시킴. 피아노가 3악장의 주제를 암시하고 이는 통일성과 대비성이 뛰어남.
  • 초연 연도: 1811년 11월 28일
  • 초연 장소: 게반트하우스, 라이프치히
  • 초연자: Johan Friedrich Schneider 독주, Leipzig Gewandhaus Orchestra

루돌프대공은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베토벤이 창작생활에 있어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베토벤은 이러한 배려에 대한 보답으로 루돌프대공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지도해 주었으며 자신의 많은 작품을 대공을 위해 작곡하고 헌정하였다. 이들 곡 중에는 B flat장조의 피아노소나타 op. 101, '장엄 미사'와 같은 거대한 곡도 포함되어 있으며 피아노트리오 '대공', 피아노 소나타 21, 23, 26번 등의 유명한 작품들도 루돌프대공과 연관이 있는 곡들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베토벤을 존경하는 것 만큼이나 루돌프대공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번에 이야기하게 될 '피아노 협주곡 5번' 역시 루돌프대공을 위해 작곡된 대표적인 곡이다.

베토벤은 1809년에 5번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으며, 이듬해 런던과 라이프치히의 출판사 (clementi-London, Breitkopf & Hartel-Leipzig)에서 출판되었다. 당시 베토벤은 귓병이 악화되어 일상생활에 상당한 불편을 느낄 정도였으며, 결국 이 곡의 초연은 1811년 11월 28일 라이프치히에서 프리드리히 슈나이더에 의해 이루어졌다. 라이프치히에서의 연주와 마찬가지로 비인에서의 초연시에도 베토벤은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자신의 협주곡이 청중 앞에서 연주되었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있었다. 베토벤이 작곡한 5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스스로 초연하지 못한 곡은 제 5번협주곡 뿐이다.

제 3번 교향곡을 비롯하여 이 시기에 작곡된 곡들이 아주 간결한 어법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악화되는 귓병의 영향이라고 생각되는데 특히 E flat장조, 혹은 C단조의 간단한 으뜸, 딸림화음을 유니즌으로 효과적인 화성전개를 통해 강한 음악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베토벤 특유의 작곡기법이 극단적으로 잘 드러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작곡시기가 완전히 일치하는 op. 81-a의 E flat장조 소나타는 베토벤의 세련된 작곡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좋은 예이며, 피아노 협주곡 5번 역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작곡양식과 효율적인 기법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매력

베토벤의 5번째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 '황제'가 가지고 있는 폴리시는 아주 명확하다. 복잡함, 애매함과는 거리가 먼 극도의 '명쾌함'과 '밝음'이 바로 그것이다. '황제'라는 제목은 그리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영웅'과는 달리 웅대함, 강인함을 연주자에게 요구하는 곡이 아니기 때문이다. 1악장과 3악장은 강인한 요소만큼이나 많은 서정성을 가지고 있고 멜로디 라인도 비할 바 없이 밝고 아름답다. 그늘진 부분이라고는 1악장의 제 2주제에서 잠시 비칠 뿐이다.

2악장의 뛰어남도 각별하다. 일반적으로 협주곡의 2악장은 '재미없는' 경우가 많고 어떻게 보면 안 들으면 그만인 곡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황제'의 2악장이 가지는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각별하기 때문이다 (베토벤 자신의 3번 협주곡에서 대단히 세련된 아름다움을 이미 들려 준 바 있기는 하다). 특히 2악장의 주제를 피아노가 느긋하게 연주하는 부분의 우아한 아름다움은 쇼팽이나 모차르트의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 조차 비교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나다. '황제'의 1, 3악장이 밝고 호쾌한 분위기로 일관하고 있어 단조로운 느낌을 줄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2악장의 전개를 살펴보면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애절한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불멸의 연인' (게리 올드만 주연, 버나드 로즈 감독) 마지막 장면에서 창문 너머로 여인이 통곡하는 장면을 소리 없이, 2악장의 선율만으로 처리한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는데 '아마데우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차르트의 20번 협주곡 2악장이 구슬프게 들려왔듯이 목관악기와 피아노로 연주하는 이 협주곡의 2악장 선율 또한 가슴이 찡한 아름다움이 있다.

때때로 '과연 황제가 뛰어난 곡인가?'라는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3번 협주곡과 같은 정열도 없고, '화려한 피아노'라고는 하지만 막상 이 곡의 피아노파트를 뜯어보면 이렇다 할 어려운 기교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피아노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곡의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큰 어려움 없이 연주해낼 수 있을 정도이며, 관현악파트와 피아노의 정교한 진행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는 의심의 여지 없이 훌륭한 곡이다. 굳이 '베토벤'이라는 프리미엄을 얹어주지 않더라도 '황제'와 비견할 만한 피아노 협주곡은 그 자신의 3번,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정도가 아닐까. 복잡한 관현악 기법이 없어도, 난해한 기교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이 곡은 충분한 화려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선율이 강조되는 부분의 효과는 더욱 커지고 있다. 현대음악들이 지나친 장식으로 인해 난삽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고전주의 협주곡에 쓰인 음표들의 효율성은 놀라울 정도이다.

악기 편성

독주 피아노,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현5부

악장 구성

  • 1악장 Allegro, E flat장조, 4/4박자, 협주곡풍 소나타 형식. 관현악에 이어 피아노가 카덴차를 연주함. 관현악에 의해 제시부가 시작됨. 제1 주제는 바이올린이 제시함. 독주자 마음대로 연주할 수 있는 카덴차를 없앰. 제2 주제 역시 바이올린이 제시함. 발전부는 제1 주제를 주로 사용하며 제2 주제는 독주 피아노로 연주함.
  • 2악장 Adagio un poco mosso, B장조,4/4박자, 자유로운 변주곡 형식.
  • 3악장 Rondo: Allegro ma non troppo, E flat장조, 6/8박자. 2악장 마지막에서 암시된 주요주제가 완전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냄. 관현악이 반복한 후 피아노로 부주제를 연주함. 주요주제가 피아노로 재현되고 관현악이 이를 반복 연주함. 코다는 주요주제를 사용함.

해설

1941/12/22 Mono, Rudolf Serkin (piano), Bruno Walter (conductor), New York Philharmoniker

(이하 괄호안 시간은 제르킨/발터의 1941/12/22 녹음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1악장 - Allegro

E flat장조, 4/4박자, 소나타형식 활기차고 당당한 악장이다. 1악장의 시작을 알리는 장 3도의 팡파레에 이어 피아노가 ff로 아르페지오를 연주하고, 자유로운 분산화음, 트릴, 스케일, 옥타브 등의 다양한 기교가 3개의 화음에 걸쳐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들 기교는 사실 그렇게 난해하지 않지만, 연주효과는 상당하다. 이 서두부분이 피아노의 강한 3도화음으로 끝남과 동시에 (1:02) 오케스트라의 1주제가 등장한다. 이 주제는 바이얼린과 클라리넷에 의해 선율이 형성되고 타악기와 트럼펫으로 강인한 윤곽을 형성한다. 2주제(1:55)는 갑작스럽게 c 단조로 등장하며 바이올린으로 제시된다. 이 악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단선율로 이루어진 부분인데 곧바로 호른이 장화음으로 이어받고 두 개의 주제선율을 소재로 악상은 발전해 나간다. 피아노는 약한 반음계의 상승음형으로 등장하여 (3:57) 조용하게 1주제를 연주하고 오케스트라의 당당한 선율들과는 대조적으로 조용하게 음악을 진행한다. 이러한 대조는 곡의 전개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나타난다. 피아노는 관현악과 대립하지 않고, 독자적인 선율부만 포르테로 연주할 뿐이다.

전개부는 (7:35)는 독주 피아노가 반음계로 제시부를 마감하는 동시에 오케스트라가 강하게 1주제를 연주하면서 시작된다. 제시부의 소재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면서 화성적인 변화 (9:05)와 배치의 반전이 일어나고 목관악기들에 의해 우울한 선율이 계속 연주되고, 격렬한 피아노의 타건에 의해 음악이 긴장감을 가지고 한동안 전개되다가 다시 장조화성으로 되돌아간다 (10:47).

재현부 (12:29)는 오케스트라가 1주제를, 피아노가 2주제를 각각 연주한다. 재현부 끝에 전통적인 카덴짜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쇼팽이나 브람스같은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1악장의 카덴짜를 의도적으로 생략하는 경우도 있으며 당연한 결과로 카덴짜로 이어지는 화성진행도 찾아볼 수 없지만 '황제'에는 분명히 카덴짜가 등장할 수 있도록 화성이 유도되어 있으며, 관현악 파트도 분명히 팡파레를 울리며 연주를 정지하고 있다 (16:26). 다만 베토벤은 이 부분을 '공백'으로 남겨두지 않고 아르페지오와 상승음계로 이루어진 짤막한 삽입악구를 작곡해 넣음으로써 카덴짜를 대신하고 있다. 이것은 곡의 '웅대함'과 분명히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며 베토벤이 이 곡에서 의도한 분위기가 '영웅' 교향곡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짧은 카덴짜로 인해 음악의 집중력은 대단히 높아졌으며 오히려 간결한 느낌마저 주고 있기 때문이다.

코다 (17:27)는 제 1주제를 소재로 하여 매우 정열적인 악상으로 전개된다. 피아노는 장 3도와 그 딸림화음을 왼손의 묵직한 터치를 유니즌으로 하여 분산화음으로 연주하고 현악기는 1주제를 화성적으로 변화시키면서 곡의 클라이막스를 형성한다 (17:50). 화성이 3도에서 멀어지면서 피아노의 터치는 점점 사그라들고 반음계적인 상승 후에 겹트릴형식의 분산화음을 연주하면서 피아노의 부지런한 움직임 속에 오케스트라가 1주제의 리드미컬한 마지막 동기를 힘차게 연주하면서 악장이 끝난다.

2악장 - Adagio un poco moto - attacca

B장조, 4/4박자, 조금 빠른 느낌의 아다지오, 변주곡형식 우아하기 그지없는 주제선율이 현악기를 타고 흘러나오다가 (~1:25), 피아노독주가 약음으로 선율을 이어받아 느긋하게 노래하기 시작한다. 동일한 형태의 변주가 한동안 진행되고 중간에 조성의 변화가 한 번 준 후 독주 피아노가 다소 고조된 악상을 연주하면서 새로운 변주로 이행한다 (3:39). 자유로운 형식의 변주이므로 명확한 구분은 없으며, 앞 소절의 화음을 바로 트릴로 이으면서 악상이 변화하는 형식이다. 뒤이어 3박자의 율동적인 왼손반주와 목관악기의 오블리카토를 타고 애절한 선율이 흐르기 시작한다 (4:16) 감정이 최고조에 도달하면 선율선은 피아노에서 현악기군으로 넘어가게 되고 곧바로 16분음표의 분산화음을 피아노가 계속해서 연주하는 가운데 목관악기가 선율을 받아 악상을 진행한다. 선율의 진행이 끝나면 (7:30) 론도악장의 화성이 암시되고 바로 싱커페이션을 동반한 새로운 재료가 등장한다. 아다지오 악장에서는 그다지 싱커페이션의 효과가 느껴지지 않지만 이 재료는 바로 3악장으로 이어지게 되고, 빠른 템포를 타고 리드미컬한 주제로 변화하게 된다.

3악장 - Rondo. Allegro

E flat장조, 6/8박자, 론도 형식 3악장은 일관된 리듬이 지배하는 경쾌한 론도이다. 2악장 말미의 선율을 피아노가 ff로 이어받아 폭발하듯 제시한다. 하강음형에 이어지는 D음 유니즌의 딸림화음은 piano에서 forte로의 급작스런 전환으로 인해 대단히 산뜻한 인상을 준다 (8:07). 피아노의 제시가 끝나면 오케스트라가 똑같은 선율을 이어받아 연주한다. 팀파니와 트럼펫에 의해 리듬이 돌출되어 나오며 선율은 현악기군이 연주해간다. 론도주제의 반복이 한차례 끝나면 호른이 리듬을 이어받는 가운데 현악기로 한 차례 강인한 패시지를 연주하며 론도주제를 마무리한다 (8:50). 주제의 제시가 끝나면 바로 피아노가 7마디에 걸친 양손음형을 16분음표로 빠르게 연주하고 두 번째 주제 (8:59)를 제시한다. 트릴과 싱커페이션을 동반해 아름답고 소박한 선율을 연주하고 하강음형을 오케스트라와 반복해서 연주하고는 다시 피아노-돌체로 가벼운 선율로 이어진다. 이 선율은 후반부에 여섯잇단음표의 분산화음으로 변하고 옥타브단위로 하강한 후 다시 론도주제를 연주한다 (10:01).

두 번째 론도주제도 악장의 기본 리듬을 타고 있는만큼 싱커페이션을 동반하고 있지만 피아노의 기교가 변화함에 따라 특별한 리듬을 강조하지 않은 채 진행된다. 반복되는 론도주제는 C장조로 잠시 제시되며 (11:01) 점프, 유연한 아르페지오를 거치면서 곧장 다음 주제로 이어진다 (11:11). 이 주제는 C장조의 으뜸화음을 유니즌으로 해서 오른손, 왼손의 스케일이 계속 반복되는 흥미로운 악상으로, 론도주제와 다양하게 융합하면서 가볍게 진행된다. 다음 주제 (12:38)는 이 악장에서 유일한 단조악상으로 A단조의 양손 분산화음으로 다소 거칠게 등장하며, 오케스트라는 계속 리듬만을 연주한다. 피아노는 긴 트릴을 마지막으로 다시 론도주제를 한차례 반복한다. 이후에는 새로운 주제의 등장 없이 론도주제만을 가지고 전개해 나가는데 음악의 주도권은 완전히 피아노가 쥐고 있으며 오케스트라는 피아노의 선도에 이끌려간다는 구도를 취하고 있다 (15:28). 이제 오케스트라가 론도주제를 현악기의 강한 리듬을 타고 한 차례 연주한 후 피아노는 갑작스레 약음으로 세 번째 론도주제를 리드미컬하게 연주하고 긴 트릴로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보조를 맞추고는 양손 동일한 음형의 분산화음으로 계속 같은 주제를 연주한다 (16:35). 마지막으로 오케스트라의 '론도 주제 마무리'가 있고 (16:45) 코다에서는 반복되는 팀파니의 리듬을 타고는 점점 곡이 사그라들어 간다. Adagio의 속도지시 속에서 완전한 화성적 종결이 나타났을 때 (17:19) 갑자기 Piu Allegro로 피아노가 힘차게 스케일을 연주하고 론도주제의 첫머리를 오케스트라가 힘차게 연주하면서 곡은 끝난다.

리뷰 포인트

'황제'를 들으면서 그 연주의 성패를 평가하는 기준을 정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곡의 음반은 정말 수 없이 많으며 연주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기 때문에 '절대적인'평가기준이 있을 수는 없지만, 이번 기회에 '악보에 얼마나 충실한 연주인가?' 하는 것을 가장 우선적인 기준으로 삼고자 한다. 이것은 연주자들이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명제이며 음악에 대한 '해석'이라는 것은 악보의 충실한 재현이 바탕이 되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황제'는 구김살이 전혀 없는 밝은 곡이므로 음악이 무겁거나 심각해져서는 재미가 없다. 단적으로 말하면 '악보'에 있는 음표와 악상기호만 빠짐없이 연주해도 대단히 좋은 연주가 될 수 있다. 주관적인 음악의 재해석도 거의 필요하지 않은 곡이다.

우선 이 협주곡은 피아노 독주와 오케스트라가 균형을 이루어야만 재미있는 연주가 될 수 있다. 피아노의 독주에 오케스트라가 빛을 잃는다든가, 관현악의 녹음상태가 불량하여 그냥 '멜로디라인'만이 들려오는 연주는 듣는 사람에게 아무런 만족을 줄 수 없다. 1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있어야 하며, '팡파레'적인 주제의 성격상 강인한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와 낮은 음역-높은 음역에 이르는 관현악의 디테일이 빠짐 없이 살아 있어야 한다. 피아노의 음색은 밝고 빛나는 소리 - 비유하자면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은 덩어리라고나 할까? - 에 단단한 터치를 들려주어야만 한다. 팀파니의 사용도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데 1악장의 제시부 같은 곳에서는 분명히 존재감을 가지고 들려오지 않으면 안 된다. 피아노는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다이내믹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분명히 파악하여 돌출하지 않고 적절한 균형을 맞추어 줄 필요가 있다. 1악장에서 피아노가 주제선율을 처음으로 연주한 후 선율 없이 분산화음만을 연주하는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의 목관악기들과 대단히 세심한 호흡을 맞추어 줄 필요가 있는데 이 패시지가 끝나는 순간에 피아노는 강인하게 트레몰로음형을 연주하며 계속해서 스포르짠도를 연주하게 되는데 타이밍도 타이밍이지만 순간적으로 쳐 주는 양손 옥타브 G음의 묵직한 중량감도 필수적이다. 피아노가 등장한 후 제시되는 몇 안되는 포르테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는 '팡파레'적이 성격과 선율적인 성격이 잘 조화되면 재미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호흡을 맞추는 부분은 특별히 어려운 곳이 없으므로 적절히 '대립'을 하는 분위기가 바람직하다.

2악장은 피아노로 주제선율을 연주하는 부분이 핵심이다. Adagio un poco moto라는 속도지시가 있지만, 가급적 느긋하게 해석해서 연주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오자와/보스턴심퍼니와 녹음한 제르킨의 피아노파트는 이 악장의 정답이라고 할 만하다.

3악장은 이 곡에서 가장 밝고 활달한 정서를 담고 있으며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가 대화하는 듯 한 유연함이 필요한 악장이다. 론도주제는 두터운 화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피아노는 힘을 바탕으로 한 명확한 터치와 맑은 음색(악장의 밝은 분위기를 반영하는)으로 연주되어야하며 오케스트라는 현의 두터운 소리를 바탕으로 리듬을 연주하는 트럼펫의 사운드가 또렷하게 치고 나와야만 한다. 이어지는 서정적인 선율선에서 피아노는 문자 그대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주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트릴, 분산화음의 연주도 무거운 느낌 없이 편안하게 연주해나가면 된다. 3악장에서는 팀파니가 리듬을 많이 담당하고 있으므로(특히 코다에서) 팀파니의 소리가 퍼진다거나 명확하지 못해도 재미가 현저히 반감된다. 리드미컬한 리듬이 전 악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들려 주어야 한다.

'황제'는 지금까지 작곡된 모든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밝은 곡이다. 굳이 웅장한 음악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으며 브람스의 협주곡처럼 다소간의 부담을 안겨주는 곡도 아니다. 문자 그대로 쉽고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면 베토벤이 남긴 위대한 선물을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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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만 듣고나면 살 맛이 난다(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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