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영광의 순간 op. 136
역사
- 작곡 연도: 1814년
- 작곡 장소: 빈
- 헌정, 계기[1]:
나폴레옹은 1804년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고 프랑스 제국을 선포한 뒤, 약 10년간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다. 프랑스 제국이 선포되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란츠Ⅱ세는 오스트리아 대공국을 중심으로 제국 안의 자신의 영지 뿐 아니라, 밖에 있는 영지까지 포함하여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승격시킨 뒤, 자신은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의 이중 황제가 되었으나, 나폴레옹은 현재 서독에 해당되는 독일인의 소국들을 합쳐 라인동맹을 만들고, 자기 영토에 복속시킴으로써(1805), 결국 신성로마제국을 해체시키고(1806), 빈까지 쳐들어가 프란츠 황제의 무릎을 꿇렸으나(1809), 1812년의 러시아 원정 실패 후, 1813년에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대륙의 연합군이 다시 나폴레옹 군을 몰아내어, 나폴레옹을 엘바 섬으로 추방하기에 이른다(1814.5.4).
그 뒤 1813년 6월21일에는 웰링턴이 이끄는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연합군이 스페인의 비토리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나폴레옹의 형이 이끌던 프랑스 군을 피레네 산맥 이북으로 완전히 쫒아내었으며, 이에 감격한 베토벤은 ‘웰링턴의 승리’를 작곡하게 된다. 오스트리아는 1814년~15년 사이 빈회의를 이끌며, 롬바르디아, 티롤, 달마티아, 베네치아 등의 영토를 회복하고(사실 이 영토는 이탈리아 영토로서, 이탈리아는 후에 독립을 위해 오스트리아에 반기를 든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가 작곡된 것도 바로 오스트리아의 압박을 받던 이 시기로서,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국민합창곡이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독일 내의 여러 군소 국가들의 맹주이자, 유럽 최강의 국가로서의 지위를 회복하고 다지게 된다.
이 ‘영광의 순간’이 작곡된 시기는 1814년으로서, 아직 최후의 일격인 워털루 전투(1815.6.16~18)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이 곡은 빈의 위세를 다지기 위해 빈 시당국에서 베토벤에게 의뢰한 곡으로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비엔나)을 중심으로 유럽이 다시 뭉쳐 밖에서 감히 넘볼 수 없는 최강의 제국임을 만천하에 드날리고자 하는 의도가 명백하게 보이는 애국적인 칸타타라 할 수 있다. 초연 시의 텍스트는 전직 군의관이었던 알로이스 바이센바하였는데, 초연 때 신통찮았다는 평이었기에, 후에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제안을 받아들여, 요제프 카를 베르나르트가 개작한 것이다.
- 초연 연도: 1814년 11월 29일
- 초연 장소: 빈
- 초연자:
베토벤의 칸타타 ‘영광의 순간’은 1814년11월29일에 빈의 가면무도회용 홀에서 초연되었다. 그날의 연주회 프로그램은, 배틀 심포니로 불리는 ‘웰링턴의 승리’(1813년 초연)와 교향곡7번, 그리고 ‘영광의 순간’이었다. 당시 연주회장에는, 나폴레옹이 엘바 섬으로 추방당한 뒤, 유럽의 재편성을 위한 빈회의의 주역으로 활약 중인 오스트리아 제국의 메테르니히를 비롯한 유럽의 유명 정치인들, 러시아의 황비, 프러시아 왕, 기타 고위관리를 포함하는 엄청난 청중이 몰려든 것으로 보아, 베토벤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12월2일과 12월 25일에도 그대로 다시 공연되었다.
악기 편성/성악가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어린이 합창, 혼성합창 플루트 여러 개, 피콜로 1, 오보에 1, 클라리넷 1, 바순 1,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 그리고 현악기들
소프라노는 비엔나, 메조 소프라노는 여자예언자, 테너는 수호신, 베이스는 민중의 지도자를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