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베른: 파사칼리아 op. 1
베베른이 작품번호를 붙인 31곡중 맨 첫 작품으로 바로 쇤베르크에게서 1904년 가을부터 1908년까지 받은 레슨을 끝맺는 졸업 작품에 해당한다. 이 곡은 전곡이 269마디로 그의 작품중에서 가장 방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연주시간은 10분 남짓된다.
악기 편성
악기 편성은 피콜로, 플룻 2, 오보에 2, 잉글리쉬 호른, 클라리넷 2, 베이스 클라리넷, 파곳 2, 콘트라 파곳, 혼 4, 트럼펫 3, 튜바, 팀파니, 각종 타악기, 하프, 현 5부의 대편성이다.
해설
이 곡은 무조의 곡이 아니며 D단조로 시작해서 D장조로 전조된 뒤 다시 D단조로 끝난다.
파사칼리아라 함은 바흐의 오르간 작품에 쓰이기도 했던 바로크 시대의 작곡양식으로 샤콘느와 유사한 변주곡을 일컫는 데 가장 큰 특징은 바탕에 깔리는 베이스의 선율이 변함 없이 지속되면서 그 반복위에 변주를 쌓아간다는 점이다. 베베른이 이 양식을 도입한 데에는 교향곡 4번 4악장에서 파사칼리아 양식을 이용한 브람스에 대한 존경의 표시를 담고 있다. 또한 D단조를 택한 것은 스승인 쇤베르크에 대한 존경의 표시도 담고 있는데 D단조는 쇤베르크가 가장 좋아한 조성이라고 한다.
곡은 파사칼리아의 베이스 주제가 되는 간결한 8개의 음을 ppp로 바이올린이 조심스럽게 연주함으로써 시작되며 이어지는 곡들은 이 주제의 변주에 해당한다 (사족이지만 오디오로 감상시에는 보통의 볼륨으로는 ppp의 주제가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베베른은 파사칼리아라는 엄격한 대위법적 변주곡 양식위에 제 1변주에서 주제를 상성에 둔 화성을 제기하고 이 화성 역시 베이스 성부와 함께 변주상의 기반에 두고 있다.
이 곡의 가장 큰 특징은 파사칼리아 양식위에 새로운 선율 주제가 등장하면서 전체적으로 소나타 형식을 띄는 2중적 구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사칼리아와 소나타형식의 2중 구조라는 아이디어는 이미 브람스의 교향곡 4번 종악장에서 쓰였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베베른의 경우 파사칼리아 주제와 독립된 선율 주제들을 변주위에 덧씌워서 브람스가 쓴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제 1주제는 변주 초반에 클라리넷에 의해 제기된다. 이런 선율은 쇤베르크의 문하에 들어가기전에 베베른이 습작으로 남긴 "Im Sommerwind"와 같은 작품에서도 풍부하게 확인되는 것으로 신 빈악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말러를 연상시키는 점이기도 하다. 뒤이은 클라이막스를 만드는 방법 역시 말러의 후기 교향곡을 닮은 구석이 있기도 하다.
곡은 이런 소나타 형식을 뚜렷히 보여주기 위해 ABCD 4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A는 앞선 그 제 1주제의 제기부에 해당하고 첫 클라이막스를 담고 있으며 B는 D장조로 전조된 부분으로 역시 클라리넷에 의해 제 2주제가 제기되며 C는 다시 D단조로 돌아온 후 두번째 클라이막스를 포함한 부분으로 제기된 주제들의 전개부에 해당하며 D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포함하며 재현부와 코다에 해당한다. 이 소나타 형식의 각부분은 페르마타로 구분되어 있어서 유심히 듣고 있으면 구분이 되는데 다이나믹 레인지와 템포는 비례관계에 놓여있어서 클라이막스로 되면 템포가 빨라졌다가 다시 곡이 잦아들면 템포가 느려진다.
특징
베베른은 작곡가로서뿐만 아니라 지휘자로서도 활동했는데 그는 상당히 다양한 레파토리의 곡을 다뤘다고 한다. 그중 모차르트 교향곡의 지휘 횟수를 보면 교향곡 41번이 적어도 4차례로 가장 빈번했음이 알려져있는데 이는 베베른의 작품들과 모차르트의 이 마지막 교향곡과의 연관성을 생각하면 어느정도 수긍이 갈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1]. 즉 쥬피터 교향곡의 4악장이 푸가와 소나타 양식의 2중적 구조라는 점과 베베른의 op. 1을 포함한 몇몇 곡들이 바로크 양식과 소나타 양식의 2중적 구조라는 점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 곡을 듣고 있는 필자의 머리엔 또 다른 주피터 교향곡과의 유사성이 떠오른다. 비단 이런 구조적인 친밀성 뿐만 아니라 곡을 감상하는 측면에서도 베베른의 "파사칼리아"는 쥬피터 교향곡과 흡사한 매력을 띄고 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이 간결하다는 점에서는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겠지만 특히 쥬피터 교향곡 4악장의 뒷부분 클라이막스를 들어보자. 불과 몇 마디 안되는 이 클라이막스에서 팀파니의 강타 위에 푸가로 얽어지는 트럼펫의 화려한 정점은 분명 이 곡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일 것이다. 이런 간결하지만 짜릿한 감흥은 베베른의 "파사칼리아"에선 더욱 극대화되어있다. 아니 곡 전체가 오직 이 점만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보면 되겠다. 베베른은 이 곡에서 목관으로 선율을 노래하게 하면서도 클라이막스에선 어김없이 트럼펫들이 내지르는 화려한 음색으로 투티를 장식한다. 물론 과격한 팀파니의 난타 역시 클라이막스의 매력으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곡에서 불과 10분 사이에 이런 fff의 짜릿한 순간을 모두 3번 맛볼 수 있는데 이는 클라이막스 앞뒤로 ppp내지는 pppp라는 극단적인 부분이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곡의 정수만을 위해서 쓸데없는 잔가지를 모두 버림으로 해서 최대로 압축시켜놓은 작곡 기법, 그만큼 곡을 듣는 재미는 직접적인 것이고 또한 효과적인 것이 된다. 바로 이것이 베베른의 천재성이 아닐까?
디스코그래피
출처
- ↑ 도흐나니/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DECCA)의 모차르트 후기 교향곡 & 베베른 관현악곡집 내지 (글: Calum MacDona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