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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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es Brahms (1810 - 1856)

Robert Schumann

로베르트 슈만

출생: 1810/06/08, Zwickau, Germany

사망: 1856/07/29, Bonn, Germany

목차

생애

1828년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한 슈만은 곧 유명한 피아노 교수인 프리드리히 비크 아래에서 피아노 연주를 공부하게 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그의 스승은 슈만이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1832년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피아니스트로의 꿈을 접고 작곡에 몰두하게 된다.

슈만은 비크의 다른 제자와 잠깐 사귀기도 했으나 1835년 즈음 9살 연하인, 스승의 딸 클라라 비크에 관심을 갖게 된다. 1837년 자신의 스승이자 클라라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에게 결혼 승낙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다. 클라라의 아버지는 둘의 관계를 극렬하게 반대했는데 클라라는 당시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의 길을 가기에 바빴고, 슈만은 작곡에 소질이 있었지만 가난했으며,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면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로베르트는 클라라의 아버지와 치열한 법정 싸움까지 하게 되고, 결국 1819년 9월 13일 생인 클라라가 아버지의 동의가 필요없는 성년이 될 때까지 결혼할 수 없게 됐다.

마침내 슈만은 클라라가 만 20세가 된 1840년 9월 12일 클라라 비크와 결혼하여 라히프치히에서 신혼집을 차리게 된다.

그 이후에 클라라 슈만은 콘서트 연주자로 연주 여행을 자주 떠나게 되는데 그 때마다 슈만은 그녀와 동행했지만, 대중들에겐 작곡가로서의 남편의 무게보다 피아니스트인 아내의 존재감이 더 컸다고 한다.

결혼 초기부터 슈만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는데 1844년 드레스덴으로 이사했으나 그곳에서도 정규직을 얻지는 못했다. 마침내 1850년 뒤셀도르프에서 음악감독직을 맡고 이사하게 된다.

하지만 곧 지휘자로서 능력이 뛰어나지 못했던 슈만은 청중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들로부터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뒤셀도르프의에서의 압박은 1853년 무렵부터 슈만에게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오랫동안 시달렸던 이명 증상에 환청이 더해졌으며, 밤에는 죽은 작곡가의 귀신이 그에게 "영혼의 주제"를 알려주는 악몽에 시달렸다.

1854년 2월, 슈만의 증상이 매우 심각해져서, 스스로 환각 증상의 문제를 자각한 슈만은 아내를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고 클라라에게 조심시키기도 한다. 2월 27일 슈만은 라인강의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하지만 뱃사공에 의해 구조됐으며, 결국 본 근처의 에덴니히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슈만은 그곳에서 1856년 7월 29일 죽음에 이르기까지 요양하게 된다.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슈만의 사인은 매독이라는 견해가 있는데, 그의 정신병적인 증상은 수은 중독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당시 수은은 매독 치료제로 사용됐다.

또한 슈만이 급격한 기분의 변화와 창작활동의 불규칙함으로 미루어 보아 평소 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도 추측된다.

음악

슈만의 작품해설

슈만 작품 연대기

[1] 19세까지 1810-1819

[1] 20세~ 1820-182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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